필립 골럽을 퀴어하게 읽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실비아 슬레이(Sylvia Sleigh)가 그린 필립 골럽(Philip Golub)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대학에 다닐 때 어느 수업에서였을 것이다. 페미니즘 미학 수업이었을 수도, 미술론 수업이었을 수도 있겠다.

​안팎 뒤늦은 읽기

 

놀이터를 생각하며

 

그는 이사무 노구치(1904-1988, 미국태생의 조각가)의 놀이터가 안전을 이유로 개축된 것을 아쉬워 했다. 제일 높은 그네는 철거되고, 미끄럼틀 난간에는 손잡이가 생기고, 이런 식의 변화들을 그는 마뜩지 않아 했다. 나는 그 정도 차이가 무어 그리 대수인지 알지 못했다. 그네는 여전히 그네였고 미끄럼틀은 여전히 미끄럼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가 형상이 될 때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드리핑 기법을 이용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는 한귀퉁이에 붉은색, 노란색, 녹색의 원 세 개를 그려둔 그림이었다. 추상회화를 읽는 능력이 없는 내게 그것은 얼룩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 곁에 있었던 친구는 그 그림이 혼돈과 질서, 카오스와 코스모스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귀퉁이의 원들은 신호등이라고, 질서를 표현하는 신호등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