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카펫

 

2017.04.21

​숩

너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키가 죽음을 생각할 때

오는 키의 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100년 만의 폭설에 빠진 발

만져주지 않았다

키는 모래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붉은 모래 사라

 

붉은 돌담 앞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담 너머엔 감나무가 있고 감나무엔 감이 없다 

오의 손목에는 검은 봉지가 매달려있다 

16년 전 오는 손목을 여러 번 버렸다 

오는 전조등을 끈다

손목이 홀로 돌아갈 때 

소식이 골목에 이른다 

네가 살아있다

 

총성이 들리고

어른 아이 여자 남자 뒤섞인 웃음소리가 급히 달라붙는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한 무리 지나간다

한 소년이 뒤로 걷는다 

휴대폰이 소년의 얼굴을 밝히다 말고 밝히다 말고

 

한 사람씩 교탁 앞으로 나와

첫 번째 수업은 언제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38번은 한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36번과 같습니다

36번이 고개를 들었을 때

교탁 앞은 비어있다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

교사는 교탁을 두 번 친다

너 너무 짧다 다시 

너는 검은 머리카락을 겨우 일으킨다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모퉁이를 돈다

꼬리가 잘린 고양이가 전봇대로 들어간다

아이가 가로등 아래에서 같은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고

형광 셔틀콕이 아이의 뒤에서 반원을 그리고 있다 

반짝이는 것을 목격한 죄라고?

아이가 돌아본다 

 

곧 사라질 언어만 배우겠다며 손가락을 구부릴 때 

키가 적고 있었던 단어는 코끼리였을까?

베르베르인 베르베르인이 되어

키는 쉬지 않고 발을 굴리고 있다

한낮의 태양 아래 형형색색 천을 짜고

숨어있는 동굴에서 문득 잠이 들고 

하루에 일곱 번 민트 차를 마신다 

골목의 골목이 궁금해

길의 끝에서 슬리퍼를 벗고

비에 젖은 까만 동물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이제 그만 가자

폭죽이 터진다

우리는 일종의 형벌이지

 

헤드라이트가 골목을 비추고 지나간다 

노인이 붉은 돌담을 향한 채 담배를 태운다 

노파는 문턱에 앉아 에어캡을 터뜨린다 

엄지와 검지 검지와 엄지가 하나씩 천천히

네가 살아

키는 거의 울먹인다

오는 검은 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너를 생각한다

베르베르식 카펫 위에 올라서서 먼지를 일으킨다 

발가락 사이로 붉은 모래가 솟는다 

붉고 밝고 뜨거운

기하학무늬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