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로야 

근사한 악몽 02
A Nice Nightmare 02

 

2017.06.08

XX.XX

엄마는 이곳이 싫어 앓아누웠다. 나는 월세 내며 버티다가 다시 부모님과 살림을 합쳤다. 엄마는 서서히 고립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마을버스 한 번, 지하철 한 번이면 서울인데 호들갑이라고 생각했다. 그 호들갑을 한동안 약속 시간을 매번 어기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상추를 씻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독립에 실패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는 나를 미워했다.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닐 골목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와 '임대 문의'가 붙은 빈 건물, 잡풀이 잔뜩 자란 공터만 가득했다. 나설 곳이 없는 사람. 어디선가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설탕이 타는 냄새도 흘러들어왔다. 밤하늘은 매일 고공 크레인의 실루엣에 찢겼다. 나는 검은색의 옷만 입고 다녔다. 술에 취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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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의 기록방식은 날짜가 아닌 횟수로 접근했다.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보는 횟수만 적고, 언제인지는 일부러 헤아리지 않았다. 날짜는, 시간은,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때의 나에게 날짜는 무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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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사이 들려오는 소음

공터에 부는 바람 소리 

공사장 장막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

공사장 안 쪽의 먼지 소리 

소음 사이 들려오는 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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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공터와 온갖 설비기계에 둘러싸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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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처음 만들어지는 도시라 가능한 변두리의 모양이 있다.텅 빈 도로에는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들이 굴러다닌다. 넓은 공터, 좁은 공터, 직사각형 공터, 정사각형 공터, 붉은 흙이 덮인 공터, 노란 흙이 덮인 공터, 자갈이 깔린 공터, 공터들로 이어진 지평선, 그 위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개발요소들. 공원에 심어질 나무의 뿌리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숫자가 쓰여있다든지 건물 전체가 단열재로 쌓여 햇빛에 반사되며 미친 듯이 발광하는 순간이라든지 무덤처럼 둥그런 흙더미 여덟 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인 벽돌 더미, 보트 모양으로 세 개씩 묶인 철근들 따위의 형태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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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가 너무 안 오자 넌지시 입술 사이로 욕이 튀어나왔다. 아스팔트가 매끈매끈하게 깔린 교차로 한복판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씨발이라고 써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