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게

 

2017.06.23

​숩

방이 떠오른다

방은 모른다

구름이 지나가는 속도로

리코더를 부는 작은 입으로

길게 내민 손가락과

느리게 휘젓는 공중의 잎으로

어렴풋한 연두

창을 말려야 한다

떨어지면 끝이니까

에델바이스는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있으니까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만 기울여도 될까?

 

혹시 이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은 달이 많고 몇 개는 가짜야

가짜 같은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겠어?

연두색 달을 두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모르겠는 말과

모르겠는 말 사이

너는 입을 다물고

나는 사탕을 물고

빨간 양말 두 개와

혓바닥 두 개

모르겠습니다

 

방으로 침범하는 것

견딜 수 없는 속도로

책상 위를 지나가는 것

중단하고 싶어

물이 엎어지고 있다

한 번 넘어져 본 언덕과 여름

깜박이는 것들과 무관하게

방은 전진한다

 

그들에게는 몇 개의 방이 있습니다.

201호 혹은 403호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방

방 속에 방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방입니다

방을 이루는 창과 창을 이루는 골목에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비의 한가운데 한 얼굴이 갑자기 솟아나 웃기도 하고요

저는 그들이 재밌습니다

으으 차가워

낮은 언덕이 보입니다

8월의 언덕에는 과일장수 야채장수

그들은 양파와 감자처럼 둥근 것에 한참을 몰두합니다

매일의 언덕 위로 일어나는 얼굴

목소리보다 먼저 창을 넘는 얼굴

정말 본 적이 없습니까?

 

정류장에 앉아 있는 뒤통수가 영원히

 

떠나는 방이 있다

내가 먼저 혹은 네가 먼저

느리게 짐을 정리하는 방

맨발로 밖으로 나가고

산산조각 빙빙 도는 밤

신호등이 우르르 쏟아지는 입

빛나는 원형들이 추락하는 눈동자

모서리가 없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굴러갈까?

나는 다만

점멸하는 등

앉아있는 목

이제 돌아가지 않는 것들을 갖고 있다

조금 느리게 한번 더

우리라는 역할이 끝날 때

구부러지는 고개를 바라보지 않는다.

네가 모르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창을 열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책상이 멀어지고

TV가 끝나고

가구들은 본격적이다

없는 창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연두가

헐떡이며 들어오려고 한다